게임 & 워치
[image]
GAME & WATCH
ゲーム & ウオッチ[1]
[clearfix]
1. 개요
닌텐도에서 1980년 4월 28일에 5,800엔[2] 으로 발매한 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이자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 강자의 서막.'''[3] 게임보이를 출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매됐으며 1991년 10월 14일에 마리오 더 저글러 게임을 마지막으로 단종됐다.[4] 옛날에는 서독과 오스트리아에서 "트리코트로닉"(Tricotronic)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적도 있다.
게임을 본체의 롬에 내장했기 때문에 후에 발매한 패밀리 컴퓨터와 게임보이와 달리 게임 카트리지의 교환으로 다른 게임을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거기다 LCD도 '''세그먼트 LCD(Segmented LCD)'''라고 해서 캐릭터와 움직이는 사물을 도트로 찍어서 표출하는 게 아니라 계산기처럼 통짜로 LCD에 표기한 것을 출력하는 형태이고, 배경이나 고정된 사물 같은 경우는 LCD로 출력하지 않고 그림을 오려 붙여놨다. 그래서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내려면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어야 했다(...).[5]
게임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알람 기능을 탑재한 시계로써 사용할 수 있다.[6] 많은 게임은 2단계의 난이도 사이에서 선택하여 즐길 수 있다.
초기의 흑백으로부터 컬러 스크린을 붙여 배경이나 객체를 표현한 것도 있고, 화면을 약 1.7배 넓힌 와이드 스크린, NDS처럼 반으로 접는 식의 멀티 스크린 등으로 발전해 나갔다. 일부 모델은 스누피나 미키 마우스 등 타사의 캐릭터를 사용한 것도 있다.
게임 & 워치의 판매 대수는 훗날 이와타 사토루의 '사장이 묻는다: 게임 & 워치' 편에 의해 밝혀졌는데, 모든 게임 & 워치 시리즈를 통틀어서 총 4,340만 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중 일본은 1,287만 대, 해외에는 3,053만 대가 팔려 나갔다. 참고로 당시 인터뷰에 응했던 게임 & 워치 개발자들은 30년이 흐른 후에도 닌텐도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사장과 인터뷰하고 있던 것이다. 이 점은 인상적인 장면.
2. 상세
2.1. 개발 과정
닌텐도의 개발자였던 요코이 군페이가 1977년 신칸센에서 계산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사람을 본 것이 탄생의 계기이다. 그 모습을 본 요코이 군페이는 갖고 걸어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작은 게임기를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요코이 군페이는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이런 콘셉트의 게임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그 즉시 개발을 지시하면서 샤프와 LCD 개발 및 공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1970년대 초 전자 계산기의 붐으로 LCD 생산 공장에 대규모 투자했던 샤프에서는 1970년대 후반 시장 포화로 붐이 꺼져가면서 마침 대체 수단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7] 에 의하면 요코이 군페이는 게임 & 워치 외형 디자인에 대해 인체 공학을 철저히 고려해서 설계했다고 말했다. 게임기 본체의 형상은 양손으로 잡기 쉽게 가로로 길게 만들었고, 양손으로 잡았을 때 게임기가 숨겨지도록 만들었다. 게임을 조작하는 데 필요한 버튼은 두 손으로 조작 할 수 있도록 좌우에 1개씩 달았다.
첫 번째 제품의 LCD 크기는 세로로 2cm로 정했다. 처음에는 5cm 정도의 크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잡지를 읽고 있는데 잡지를 들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있었고, 들고 있는 잡지에 찍힌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여 작은 크기로도 괜찮을 것 같다 판단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LCD를 쓴 건 원가 절감에 공헌해 가격 경쟁력으로 경쟁자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첫 번째 제품에 들어간 게임은 '볼'이었는데 이 게임을 제작할 때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힌트를 얻었다. 떨어지는 볼을 잡으러 좌우로 움직이고 게임을 진행할 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 모두 요코이 군페이가 정리한 아이디어였다. 다만 1970년대 후반의 기술로는 게임으로 구현이 어려웠기 때문에 샤프의 LCD 개발 문제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2.2. 인기
개발 당시에는 회사원 등의 성인이 출퇴근 시 지하철에서 간단하게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와이셔츠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어졌고, 게임의 내용도 간단했다. 그러나 발매 후 주 구매층이 의도와 다르게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뒤에는 콘셉트를 변경, 보다 게임성을 중시하여 개발을 진행했다. LCD 크기를 키우거나 와이드 형으로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는 2개의 LCD를 넣은 게임도 나왔다. 당시 인기 있는 닌텐도의 게임이었던 동키콩과 마리오, 젤다의 이식작이나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도 만들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용 게임기의 디스플레이 장치는 LED 또는 VFD였다. 그러나 당시의 LED는 점 타입으로 표시할 수 밖에 없어 단순한 화면만 표시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VFD는 복잡한 화면에 컬러 표시까지 가능했으나 휴대하기 불편할 정도로 부피가 커지고, 소비 전력이 너무 커 건전지가 오랫동안 버틸 수 없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게임 & 워치의 LCD는 이런 문제들 중 건전지 수명과 휴대성 그리고 야외에서의 시인성 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고, 5,800 엔의 합리적인 가격[8] 과 더불어 성공한 원인이 됐다.
게임 & 워치의 성공은 사회 현상화되었다. 게임 & 워치 성공 이후인 1980년대부터 학교에 게임기를 가져 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도난이나 친구들에게 빌려줬다 망가뜨리는 문제 등이 많이 발생했다. 결국 각 학교에서 반입 금지 조치가 나왔다. 당시 게임 & 워치 같은 전자 게임기들은 아이들에게는 조금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또 장난감 가게에서 매장 전시의 게임기가 도난 당하는 등의 피해가 급증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전자 게임기의 판매 자체를 불미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취급했다.[9]
총 65종의 게임이 발매됐으며 일본 내 1,287만 대, 해외 3,053만 대, 합계 4,340만 대의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닌텐도는 게임 & 워치의 성공으로 1980년에는 70억 엔의 막대한 빚을 전부 갚고도 40억 엔이나 흑자를 낼 수 있었다. 1982년에는 매출액이 662억 엔으로 1981년 매출액의 무려 3배나 됐으며 이게 모두 게임 & 워치의 성공 덕분이었다. 패미컴과 함께 오늘날의 닌텐도가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
2.3. 영향
게임 & 워치의 성공으로 전자 계산기 회사는 물론 장난감 기업들까지 너도 나도 앞다투어 휴대용 LCD 게임기를 내놓았다. 전자 계산기로 유명했던 카시오에서 이를 모방하여 '인베이더 게임'을 시작으로 게임을 집어넣은 전자 계산기, 게임탑재 손목시계등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폭, 반다이, 타카라, 토미, 타카토쿠 토이즈, 각켄도 닌텐도의 뒤를 이어 수많은 LSI LCD 휴대용 게임기들을 발매했다.
당대 게임기, 게임소프트 광고
또한 구 소련의 일렉트로니카에서도 게임 & 워치를 역공학한 구조의 아류작을 낸 적이 있다(참고).
타이거 일렉트로닉스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런 휴대용 LCD 게임기들을 발매해서 유명했다.
쌍문동 미니오락실은 게임 & 워치의 외형을 그대로 베꼈다. 다만 이 쪽은 게임 & 워치 같은 구식의 세그먼트 LCD 게임기가 아닌 평범한 컬러 LCD 게임기이다.
2.4. 대한민국의 경우
대부분 보따리 상을 통해 알려졌고 반도 조선 아케이드 같은 유명 연쇄점에도 전시했으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상가 내의 장난감 가게였다. 보따리 물건답게 매뉴얼이나 케이스는 거의 보기 힘들었고 배터리를 넣어 작동 상태 그대로 비닐랩을 씌워 매대에 전시 및 판매했는데 1980년대 초반 기준 가격은 대략 2~3만원 정도로 당시 중고생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10]
몇 가지 게임 & 워치들은 1980년대에 한국에서도 출시됐다. GoldStar 미니콤 게임이라는 상표명이 붙어있었으며 뒷면에 Made in Korea로 적혀 있고 분해 결과 닌텐도 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닌텐도가 금성사와 정식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녹다운 방식[11] 으로 수출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당시 삼성전자 같은 가전 회사나, 영실업, 손오공, 아카데미 상사 같은 한국의 장난감 회사들은 닌텐도의 게임 & 워치보다는 주로 경쟁 장난감 회사들의 휴대용 LCD 게임기나 탁상용 VFD 게임기들을 수입해서 판매했다. 라이센스 비용이 원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반일 감정 때문에 라이센스를 받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품임이 알려진 일이 거의 없었다. 1980년도에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는 소수의 대도시 부잣집 아이들만 장만할 수 있었으며, 학교에서 도난과 파손 문제 같은 일본과 비슷한 문제를 겪기도 했다. 그 당시 언론에서는 장난감 회사와 가전 회사들의 휴대용 LCD 게임기 사업을 신산업으로 소개한 적도 있었다.(#)
3. 십자키의 원조
게임 & 워치용 멀티 스크린 동키콩은 처음으로 십자키를 선보인 게임기이다. 이전까지의 게임기 컨트롤러라고 하면 동그랗고 네모난 버튼이나 조이스틱 형태의 레버 정도를 탑재한 정도였지만, 십자키는 엄지 손가락만으로 4방향의 키를 누르는 획기적인 조작성으로, 그 뒤에 게임기 컨트롤러의 표준이 되었다.[12] 이 십자키 디자인으로 닌텐도는 2007년 미국 국립 텔레비전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서 제58회 기술 공학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 기타
이 게임 시리즈로 나온 게임 가운데 불타는 빌딩에서 튀어나오는 아기를 구하는 'Fire'라는 게임은 바운싱 베이비즈라는 데드카피작이 MS-DOS 게임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13][14]
전 세계에 수많은 애호가들이 있으며, 골동품처럼 수집하는 이들도 무척 많다. 거래 시장도 규모가 크며 가격대도 안정적이어서 믿고 거래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번 구경해 보는 것도 좋다. 아예 역대 게임 & 워치 제품들의 컬러 사진들과 함께 국가별 배리에이션 및 희귀도를 정리한 책이 있을 정도인데(의외로 프랑스에서 출판한 불어 책이다), 이 책의 인기가 어찌나 좋은지 절판한 영역판의 경우 희귀본으로 고가에 거래하고 있을 정도. 아직도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비싼 값으로 판매하고 있다.
해외에만 발매를 한 게임을 역수입해 일본 내에 발매한 바도 있다.
게임보이에서는 아예 이 게임들을 합본으로 출시한 게임보이 갤러리도 있다.
클럽 닌텐도에서 500포인트로 게임 & 워치 컬렉션을 얻을 수 있지만, "최대한 원작과 똑같아야 한다"는 법칙 때문인지 1980년대판에 색깔만 발라서 냈기 때문에 포인트가 아깝다. 그냥 다른 거 쓰자.
닌텐도 3DS의 MP3 재생 시의 비주얼라이저 가운데 공을 드리블하는 비주얼라이저가 게임 & 워치의 오마주라고 한다. 참고로 이 비주얼라이저는 슬라이드 패드를 움직이면 실제 게임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플래시로 구현한 게임 & 워치(와 아류)들의 일부를 플레이 할 수 있다.
킹덤하츠 3에서 미니게임 중 하나로 게임 & 워치에 영감을 받은 듯한 게임이 나온다고 한다. 캐릭터도 1920년대 디즈니 단편 스타일로 나오는데 위화감이 제로에 가깝다.
머시룸 킹덤 퓨전에서도 게임 & 워치를 패러디한 스테이지가 있다. 게임기의 프레임 모양과 액정 화면 색감, 그 특유의 띄엄띄엄한 움직임까지 재현해 놓았다.
놀랍게도 MAME에서 에뮬레이션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0.19x 버전대부터 이러한 LSI 휴대용 게임기의 에뮬레이션이 대량으로 지원되었는데 당연히 여기에 게임 & 워치 게임들도 포함되어있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을 기념해 2020년에 새로운 게임 & 워치가 발매될 예정이다. 항목 참조.
5. 게임 일람
게임 & 워치/게임 목록 참조.
6. 관련 문서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8)-액정 게임기와 닌텐도의 신화
일본경제신문 트렌디 《닌텐도 「패미컴」은 이렇게 태어났다》 제4화: 휴대형 게임기 개발
7.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
[image]
게임 & 워치에서 등장하던 검은 인간 캐릭터 실루엣이 파이터로 등장한다.
[1] 흔히 아는 ウォッチ라는 표기는 잘못된 오표기이다.[2] 보다시피 매우 고가이다. 1985년 출시된 패미컴이 14,800엔이었음을 감안하면, 한 가지 게임만 탑재된 게임 & 워치가 콘솔 본체 가격의 절반 가까운 가격인 셈.[3]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에 유일하게 맞붙었던 휴대용 게임기는 PSP였는데, 1억 5402만 대가 팔린 닌텐도 DS의 절반 정도인 8천 2백만 대를 팔았다. 이게 유일한 경쟁 상대였으니 다른 게임기들은 얼마나 큰 격차로 지고 말았는지 안 봐도 비디오. 비교적 이른 시기의 LCD 게임기이나 최초의 휴대용 LCD 게임기는 아니다. 최초의 휴대용 LCD 게임기는 1979년 11월에 발매한 밀턴 브래들리의 마이크로비전이다. 무려 롬 카트리지 교환 기능도 지원했다. 그러나 LCD 밀봉 부실과 정전기로 인한 손상 문제 때문에 상업적으로 실패했다.[4] 2020년에 특별판으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가 발매예정에 있다.[5] 사실 이같은 방식은 이때나 이후 90년대를 강타했던 그 유명한 (혹은 악명높은)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hand held 형식 게임이 차용하던 방식이었다. 8,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당시 인기있던 만화나 게임의 휴대용 게임기 버전이 투명한 플라스틱에 포장되어 동네 문방구에 진열되어 있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동심을 파괴하는 치가 떨리는 저퀄도...) 당시엔 그딴 게임도 인기리에 팔려나갈 정도였고, 게임성이 좋은 게임&워치는 오히려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실제 게임다운 게임을 하게 해주는 게임보이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6] 후면에 철사를 구부려 놓은 간이 스탠드를 내장해 평소엔 탁상 시계로도 활용할 수 있다.[7] 니혼게이자이신문 트렌디 《닌텐도 「패미컴」은 이렇게 태어났다》 제4화: 휴대형 게임기 개발(#) 일본경제신문 일렉트로닉스 1994년 5월 9일 패미컴 개발 이야기를 재게재함.[8]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지만, 80년대 일본의 구매력을 얕봐선 안된다...[9] 일본 위키피디아 電子ゲーム의 社会現象 항목[10] 1980년대 짜장면 가격은 보통 1,000원 이하였으며, 1981년 삼양라면 한 개의 가격이 100원이었다.[11] 완제품으로 판매하지 않고 부품으로 판매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 현지의 노동력이 싸거나 무역 장벽이 있는 경우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1980년대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어서 노동력이 쌌기 때문이다.[12] 하지만 정작 십자키는 한 때는 닌텐도에서 특허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으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같은 방식의 획기적인 십자키를 사용하지 못하고 그립감이 좀 후진 방식을 쓴다. 사실 비디오 게임 계열의 하드웨어 산업은 '''특허를 내면 쓰지 못해서 대안책을 써서 구현한다'''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13] CGA 모니터 시절 캣 앨리 등과 더불어 컴퓨터 학원에서 돌리던 CGA 게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14] 참고로 Fire는 게임 & 워치 시리즈 중에서도 상당히 대박을 친 제품이라 초기 1세대와 와이드 버전 2세대로 2가지 버전이 존재한다.